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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삶으로 부름받았는가
복음 실천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 삶을 살아야 한다
기사입력  2020/03/21 [09:13]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 플러신학교 마크 레버튼 총장.    
©크리스천비전


   우리는 생각과 행동의 간극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들은 실제 우리 행동과 꽤나 다르다. 우리 중 누구도 옳다고 믿는 바를 그대로 실천하지는 못한다.


   이런 경향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히 더 심각한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결국 세상이 하나님의 손과 발을, 하나님의 음성과 어루만지심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부름받은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육신적인 삶이어야 한다. 복음의 정수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데 있다. 복음을 삶에서 실천하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야말로 복음이 사람들의 삶에 뿌리내렸다는 증거다.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이 부과한 구원에 대한 인간의 짐을 덜어주었다. 바티칸 법전에 순종하고 충성하고 복종하고 이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지나친 규율은 마르틴 루터를 짓눌렀다. ‘오직 은혜’라는 그의 말에는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가져오는 놀랍고 생명력 있는 희망이 잘 표현돼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성취가 아닌,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루터의 삶뿐 아니라 이후 수백만 명의 삶을 바꿔 놓았다.


   루터는 이러한 생각을 지나치게 확고히 주장한 나머지, 야고보서의 중요도가 현격히 떨어진다고 결론 내리기도 했다. 야고보서가 구원에 있어 행위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루터의 주장은 많은 개신교 신앙 운동이 행위보다는 믿음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만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이는 사실 루터의 시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축소시킨 것이지만, 많은 개신교인들에게 이러한 생각이 만연해 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은혜밖에 없고 그것만이 중요한 것이라면, 행위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시간과 몸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의 문제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믿음만큼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런 생각이 신앙생활을 외향적이며 공적인 것이 아닌, 내향적이고 개인적인 영적 활동으로 만들어 버렸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반석이 아닌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되고 만 것이다(마 7:24-28). 실제로 우리는 이렇게 단순한 믿음을 정당화하려고 마태복음 7장 말씀이 없는 것처럼 산다.
 
   얼마 전에 내가 주례를 맡기로 한 결혼식 전야 만찬에 참석했다. 하객들과 이야기하며 저녁을 먹던 중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한 커플을 만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관계와 좋아하는 약물, 굉장히 개방적인 성생활에 대해 놀랄 만큼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목사에게 흔히 일어나지 않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밝히고 다음 날 결혼식 주례를 맡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좀 당황하기는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아! 저희도 예수님을 믿어요. 믿는다는 게 중요한 거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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