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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인 축제의 시작
미주이민 70년사에 크게 기여한 첫 LA한인 축제
기사입력  2020/03/13 [06:43]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 만희복지재단 이사장 박형만 장로.     ©크리스천비전


   김진형 회장과 양석규 이사장은 돈을 모으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이사들도 돈을 보탤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물론 대한항공 등 대기업 몇 군데에서는 화려한 꽃차를 내 놓기로 했다. 그러나 주된 행사인 행렬에 참가할 악대와 태권도 그리고 고전 무용단을 동원하는데 기금이 필요했다. 결국 타운번영회 임원들과 코리안 퍼레이드를 주관하게 된 한국일보 미주본사에서 기금을 마련하는데 협력하게 됐다.


   1974년 11월 2일, 올림픽 거리에서 열린 코리언 퍼레이드를 구경하려고 3만 명이 거리를 메웠다.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축제의 광경을 본 사람들도 몇 백만 명에 이르렀다. 멀리 고국의 주요 텔레비전도 현지 취재를 했다. 코리아타운 페스티벌은 실제로 그 시대의 특종이 아닐 수 없었다.


   제1회 축제를 앞두고 한국후원회가 개설되고 초대회장에 임병직 전 유엔대사가, 이사장에 김기점 씨가 추대되었다. 한국후원회는 한인 축제에 사용된 6백 장의 태극기와 각종 행사 개최 유공자들에게 감사패를 보내왔다. 임 대사는 나의 고향과 가까운 부여에서 태어나 일찍이 미국에 건너와 조국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치신 분이다.


   한인 축제는 또 미주이민 70년사를 조명하는데도 기여했다. 미국 대륙과 인근 지역을 개척한 이민 선조들의 활동과 이바지를 평가하는 행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인축제 기간 중 코리아타운번영회에서 표창한 개척자상 수상자 중에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이민신학을 제창하면서 한인 이민교계를 이끌었던 김하태 박사와 대한인국민회와 협력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던 대한여자애국단 창립총회장 김혜원 여사가 들어 있다. 한인 축제의 주최 단체인 코리아타운번영회에서 초기 이민사회의 지도자들의 애국 애족정신을 현 세대들에게 물려주려고 개척자상을 수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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