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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번영회
한인들의 위상을 높여주는 한글 간판 달기 캠페인
기사입력  2020/03/06 [06:34]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 만희복지재단 이사장 박형만 장로.     ©크리스천비전


  나는 1972년에 시작된 코리아타운번영회 발기인총회에 참석하여 8명의 이사 중 한사람이 되었다. 발기인 모임은 올림픽, 웨스턴, 8가, 피코, 버몬트 상가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곧이어 김진형 회장을 비롯하여 양석규 이사장을 초대 임원으로 선출하고 3월 4일에는 한국서적센터에 코리아타운번영회의 현판을 달았다. 매우 빠른 걸음으로 코리아타운번영회가 발족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남가주한인회에서는 한인사회의 주도권을 빼앗길까 염려를 해서 코리아타운 분과위원회를 조직하고 대표 2명을 선출하여 올림픽, 버몬트, 웨스턴 상가 대표 6명 등 8명으로 연합회 이사회를 구성하자고 제의하고 나섰다. 코리아타운번영회의 이사들도 그러한 일로 번영회의 기반이 확고해질 것이라며 환영하였다.


  코리아타운번영회는 코리아타운 내의 상가를 활성화하는 방안의 하나로 한인 소유의 상점은 물론 타인종의 상점에도 한글 간판을 달아주는 캠페인을 벌여 1차로 61개의 업소에 한글간판을 달았다. 뒤에 가서는 한글과 영문으로 2중 언어 간판을 써 주게 되었다. 그리고 5월에는 타운 내에 한국종합의료원을 유치하고 7월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외 강의실 유치에도 성공해 하버드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한국학 과목을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9월에는 한인센터에 정봉자 교수의 영어회화반을 개설하였다.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 안에 코리아타운번영회가 생기자 일부 학자들과 언론인들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미국정부는 어느 인종이나 민족이든 세를 과시하고 떠들썩하게 구는 쪽에 복지 프로그램이나 교육 분야의 혜택을 준다며 한 해에 한 번씩 대규모의 행사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여론에 귀를 기울인 코리아타운번영회는 1974년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 동안 한인 축제를 올림픽 거리에서 열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자금이었다. 학술대회나 사생대회 등 각종 소규모 행사는 한인단체들이 모금해 자발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으나 퍼레이드 같은 대규모의 행사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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