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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
올림픽 거리를 중심으로 코리아타운이 형성되다
기사입력  2020/02/21 [04:12]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 만희복지재단 이사장 박형만 장로.     ©크리스천비전


   서독 광부 출신이자 충청도 향우인 이희덕 씨가 코리아타운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올림픽 거리에 한국 전통기와 집을 본 따 영빈관을 지어 개업하자 동포들은 물론 미국 백인들까지 줄을 이었다. 그는 또 영빈관 옆에 VIP 플라자를 지어 각종 생활 필수품을 취급하는 상점과 의사들에게 세 놓아 코리아타운의 명물로 만들었다.


   이렇듯 올림픽 거리를 중심 삼아 로스앤젤레스에 한인타운이 형성되자 당초에 다른 곳을 가서 살려던 동포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게 되어 해방 전의 만주 용정처럼 해외 한인들의 수도가 되었다. 이러한 기운을 타고 1970년대에 접어들어 미국 정부와 주류사회에 코리언의 힘을 보여주는 축제를 열자는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인들과 미국인 학자들의 연구 모임인 한국학연구회는 소수민족인 한인들이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받고 특히 이민의 주된 목적인 교육 분야의 지원에서 다른 소수민족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힘의 과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때 올림픽과 하버드 만나는 지점에 한국서적센터를 열어 운영하고 있던 김진형 씨가 코리아타운번영회를 만들어 코리언 페스티벌을 해마다 열자는 의견을 모으는데 앞장섰다. 그 무렵 남가주한인회에서도 코리아타운후원회를 신설하여 한인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하였다. 한화그룹 김종희 회장의 동생 김종식 회장은 남가주한인기독청년회 양석규 회장을 내세워 후원회를 맡아 협력하도록 하였다. 그는 그때 웨스턴과 12가에 한국식품 전문 로얄식품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식품점 바로 옆에서 웨스턴바디샾을 운영하였는데 자가용과 트럭 등 각종 자동차를 수리하면서 굿이어 타이어를 판매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왜냐하면 굿이어 타이어는 그 무렵 미국 전역에서 최고급 자동차 바퀴로 많은 이들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1972년 코리아타운번영회가 발족되었다. 올림픽 지역의 황도현, 8가의 염명섭, 올림픽의 김진형, 황현경, 웨스턴의 나와 양석규 등이 대표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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