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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코리아타운의 주역
서독동우회는 코리아 타운 건설의 산파역 감당함
기사입력  2020/02/06 [10:48]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 만희복지재단 이사장 박형만 장로.     ©크리스천비전


  로스앤젤레스는 해외 한인사회의 수도로 불리고 있다. 바로 이곳에 코리아타운이 우뚝 서 있다. 처음에는 올림픽 거리를 중심삼아 좁은 지역에 자리 잡았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중심 상가인 윌셔 거리가 심장이 되어 폭넓게 확장되어 가고 있다. 백인 비즈니스계에서도 부러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바로 이 지역의 발전에는 서독동우회 회원들의 공헌이 크다. 나의 개인 재산만 해도 대부분이 코리아타운에 자리 잡고 있다. 한인 소유의 큰 은행에도 서독 광부 출신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이나 본국의 언론도 예외 없이 한인타운을 취재할 때 서독 광부 출신이라고 자랑한다.


   대개 초창기 한인사회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지도층이 형성되었지만 우리 서독동우회 회원들이 서로 믿고 열심히 일함으로써 우리가 많이 모여 사는 코리아타운 형성에도 산파역을 감당하였다.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건설의 첫 주인공은 내 고향 후배인 이희덕 씨였다. 먼저 그가 바람을 일으켜서 그의 한식전문 영빈관 식당에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그 이듬해에 내가 회장이 되어 다른 지역에도 서독동우회가 태어나도록 독려한 결과 뉴욕, 시카고, 샌디에고, 샌프란시스코, 아틀란타, 토론토 등지에도 서독동우회가 생겨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다.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살고 있는 지역의 한인사회를 아름답고 실력있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하여 앞장서자고 다짐하였다. 이희덕 씨는 우리 서독 광부 출신으로서 가장 먼저 올림픽 식품점을 시작하였다. 1939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나 공주 영명고등학교와 충남대학교를 나온 뒤 24살 되던 1966년에 서독 광부 제5차 대열에 끼어 서독 광산에서 수만 마르크를 벌어 고향 집에 보내 부지런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여 깡통회사와 용접회사에서 일해 번 돈으로 1973년 1만 5천 달러로 올림픽식품점을 산 것이 계기가 되어 뒤에 영빈관과 VIP쇼핑센터를 짓게 되었다. 이희덕 씨의 성공 이야기가 큰 소문이 되어 미국 전대륙의 한인들에게 퍼지자 서독동우회가 여러 도시에서 발족하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1975년에 이희덕 씨의 영빈관에서 첫 모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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