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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을 중요시하는 독일인
국위선양은 다름 아닌 신용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
기사입력  2020/01/24 [06:40]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 만희복지재단 이사장 박형만 장로.     ©크리스천비전


   신용을 바탕으로 삼고 사는 독일인들은 일상적인 식료품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급 양복과 자동차까지도 직장만 있고 서명만 하면 살 수 있었다. 일본인의 경우는 신용을 완벽하게 지키기 때문에 칭찬을 받아 가면서 무엇이든지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 중에는 더러 돈을 갚지 않고 떠나는 경우가 생겨서 모든 한국인들이 신용불량 국민으로 취급받은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때 동맹국이던 이태리는 중도에 동맹관계를 깨고 연합군 측에 손을 들고 말았으나 일본은 끝까지 항전을 계속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면서 ‘일본은 믿을 수 있는 나라’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한국인을 처음 보았을 때 “당신은 일본에서 오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건네다가 얼마 지나면서 불량 한국인을 체험하고는 “당신이 일본인이라고 믿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말을 바꾸었다. 일본인답게 신용을 지켜 달라는 당부임에 틀림없었다.


   그랬는데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방문한 뒤로는 이러한 서독사회의 한국인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서독을 떠난 1967년 말에 이르러서는 코리아가 점점 나아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독일인들이 많아졌다. 국위선양은 국내에서 살거나 해외에 나와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들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1970년을 전후하여 로스앤젤레스에 이주한 서독 광부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는 일이 자주 있었다는 것을 앞에서 이야기하였다. 그들이 김 씨나 이 씨 아니면 박 씨인 경우 한국인이라는 점에 열등의식을 느껴서 김을 Kymm이라고 쓰는 이도 있었고 이를 Rhee라고 쓰는 이도 있었다. Kim 대신 Kymm이라고 쓰고 Lee 대신 Rhee라고 쓰면 한국인이 아니라는 말인가? 또 이 씨의 경우 Lee라고 쓰지 않고 Rhee라고 쓰면서 자기 집안이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Syngman Rhee) 박사의 가문이라고 길게 토를 달기도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자기 정체성을 밝히는데 떳떳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꾸미려 하는 태도는 비굴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일을 가장 싫어하였다. 귀족 가문이 아닌 평민임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밀양 박 씨의 아버지와 김해 김씨의 어머니를 부모로 모시고 태어난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누구 앞에서도 서독 광부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심지어 미국 사람들에게도 내가 독일 국민으로부터 소탈하고 정직하게 사는 생활방식을 잘 배웠노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는 누구에게나 좋은 것을 배우도록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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