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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신학적 입장
해외신학의 유입과정과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기사입력  2019/01/25 [12:27]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나성열린문교회 협동목사 김창식 목사.     © 크리스천비전


   ‘세계교회 협의회’(WCC)와 노선을 달리한 ‘국제 복음주의연맹’(NAE)은 실제 한국내의 이념적 또는 교권적 이해관계와 그대로 직결되어 더욱 분명한 분열과 대립의 명분을 주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세력인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CCC)의 출현은 보수주의적인 ‘반공주의’를 내세워서 한국교회를 이념적으로 극우의 반공신앙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분열은 선교사들이 속한 모교회의 선교적 방향과 이러한 국제기구와의 관계 및 선교지역의 성격 등과 깊이 연관되어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따라서 당시의 교회 간 갈등과 대립, 그리고 분열의 가장 큰 요인은 이념적인 과제였으며 이것은 철저한 반공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당시의 정권과 자연히 유착하고 자연스럽게 반공 세력이었던 반 WCC 세력끼리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감리교’의 경우는 ‘장로교’ 보다는 더욱 더 내부적인 세력간의 교권과 헌장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하여 분열과 화합이 거듭되다가 1958년에 다시 통합을 성취하였으나 이러한 정치적 구도는 지금까지 때에 따라 반복되어 왔다.


   현대 한국기독교의 대표적 신학자로 박형룡, 김재준 그리고 홍현설을 꼽고 있다. 박형룡이 보수 전통신앙 대표 한다면, 김재준은 혁신과 진보적 신학자이며, 홍현설은 기독교윤리학자로서 ‘복음주의적 휴머니스트’로서 현상을 중시하며 복음을 전승하려는 입장이었다. 한국보수주의 신학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정통주의 신학을 고수하면서 철저한 교회와 성서중심주의 입장에서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지도 사회 변화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진보주의는 참여의 신학을 바탕으로 사회의 변혁 자체를 선교적인 과제로 보면서 적극적으로는 정치참여의 신학을 소극적으로는 문화적 수용이나 토착화의 신학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것은 사회정치적 현상에서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신학화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진보적인 신학운동은 4.19 라는 역사적인 혁명을 체험하면서 교회의 역사적 성찰과 예언자적인 사명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역사에 있어서 진보와 보수의 신학적 입장은 사실상 해외신학의 유입과정과 무관한 것이 아니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의 시대적인 상황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 다. 가령 1960년 장로교의 고신측과 합동측이 마련한 ‘합동총회’에서 “자유주의적 이며 용공 적이며 비성서적인 WCC 노선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철저한 반공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던 체제 아래에서 보수적인 교회가 취할 수밖에 없는 명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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