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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재건
해방 직후 기독교의 일차적인 과제는 교회의 재건
기사입력  2018/11/21 [20:34]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남가주한인원로목사회 회장 김창식 목사.     © 크리스천비전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남북한에 각각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진주하면서 식민통치를 대치하는 군정이 시작되었고 이후 실질적으로 친일세력이거나 식민통치기의 기득권 세력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미 해방 전부터 심각하게 대립되어 온 바 있는 이념 논쟁이나 해외와 국내의 독립운동 세력간의 대결은 교회의 재건 과정에서 새로운 변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해방 직후 그 혼란의 과정에서 기독교회의 일차적인 과제는 역시 ‘교회의 재건’ 이었다. 여기에서 '재건'의 신학적 의미나 현실적인 개념까지도 여러 가지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교회의 원형 자체가 부서진 상황에서 교회의 '재건' 이란, 신사참배 등으로 인하여 상실한 올바른 신앙의 회복으로부터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지역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교단의 회복에 이르기까지 넓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해방 50년이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하더라도 거의 반복되면서 이합집산이 지속되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엄정하게 일제치하에서의 왜곡되었던 교회의 현상을 청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6.25전쟁 이후 남북대결의 과정에서 전쟁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물론이려니와 남북분단을 오히려 고착화 시키면서 이념대결로 분열을 조장해왔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시대적인 상황 즉 정치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인 변화에 따라 이에 대한 교권적 또는 신앙적인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교회의 향방이 순수하게 내적인 요인들, 예컨대 신학적 노선이나 신앙적인 표현에 의하여 좌우되기 보다는 외적인 현상에 대한 교회의 입장에 따라 여러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교회의 여러 배경에 따른 세력 간의 대립현상이 이해관계를 기초로 발전되어 왔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교회 외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교회의 분열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의 선교과정을 제1기(1910년 이전), 제2기(1910-1939년), 제3기(1939-1945년), 제4기(1945-1953년), 제5기(1953- 1961년), 제6기(1962년 이후)로 분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간 중에 교회의 분열(분열 이라기보다는 대립과 경쟁의식기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은 그 배경이 선교사 파송국의 이해와 함께 정교분리를 내세워 비정치화라는 신학적 이론에서 지배계층과 일정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교단의 신학적인 입장과 지역 선교의 방향을 정리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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